경제 이론이 아닌 권력이 신자유주의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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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이면의 진짜 이야기: 권력이지 아이디어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지적 우월성 때문에 승리했다는 신화는 잊어버리세요. 신자유주의 부흥의 진정한 원동력은 경제 이론의 대승리가 아니라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력들 사이의 극적인 권력 이동이었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려면 전후 세계를 상상해 보세요. 수십 년 동안 많은 서구 국가들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영향을 받은 국가 개입과 복지 정책의 조합에 의존했습니다. 케인즈는 시장만으로는 완전 고용이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가 관심을 끌었던 것은 단순히 그 아이디어가 훌륭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시대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이 그 아이디어를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대공황에 대한 해결책을 절실히 필요로 했고, 영국 엘리트층 사이에서 케인즈가 가진 지위는 그의 제안에 메가폰을 제공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로 시간을 빠르게 돌려 보겠습니다. 경제적 혼란(정체, 인플레이션, 이익 감소)이 전후 번영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기업 지도자들과 정치 엘리트들은 규제, 복지 프로그램, 강력한 노동 조합으로 인해 수익이 줄어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복지 국가에 대한 그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갑자기 노동력과 재분배를 용인하고 심지어 의존했던 기존 체제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신자유주의의 지적 승리에 대한 이야기는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 같은 인물들은 오랫동안 자유 시장, 최소한의 정부, 사회 보호 철회를 옹호해 왔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그들의 생각은 학문적 황무지로 추방되었습니다. 지적 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권력자들이 그들에게 쓸모가 없었기 때문에 무시되었습니다. 사회 세력의 균형이 바뀌면서 자본이 비용을 절감하고,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고, 국가 개입으로부터 자유를 되찾고자 할 때, 이러한 ‘신자유주의’ 아이디어는 갑자기 유용해졌습니다. 정치인들은 철학적 신념에서 이러한 아이디어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기업 이익과 시장 ‘유연성’에 우선순위를 두는 정책에 대한 정당화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주류에서 멀어져 있던 경제학자들이 중앙 무대로 부름을 받은 것은 논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처방이 권력자들의 새로운 우선순위와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신자유주의를 뒤집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더 나은 아이디어, 더 날카로운 논쟁, 더 많은 논평을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권력 균형이 자본과 부유층에게 유리한 한, 변혁적 정책은 대중에게 아무리 인기가 있더라도 실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아이디어가 조직과 사회 세력에 고정되어 아이디어가 중요해질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때 일어납니다. 즉, 노동조합, 풀뿌리 운동, 정치 조직이 책임 있는 사람들의 우선순위를 바꿀 수 있을 때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회를 재편하는 데 필요한 영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신자유주의의 이야기는 자유시장 이론의 시대를 초월한 영향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지, 누구의 이익이 보장되는지, 그리고 사회의 방향을 둘러싼 더 넓은 투쟁에서 아이디어가 어떻게 무기가 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아이디어는 중요하지만, 그 뒤에 힘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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